2026년 8월 기준 | 법무법인 여정 · 김혜경 변호사
15년 만에 나타난 대리모, 법원은 왜 아이 편에 섰나
대리모가 출산한 아이의 법률상 친모는 대리모입니다. 우리 민법상 모자관계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그 친모가 낸 확인 소송을 받아주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글은 대법원 2025년 4월 24일 선고 2022므15371 판결을 다룹니다. 보조생식술로 태어난 자녀의 신분 관계, 대리모 계약의 효력, 그리고 혈연이 진실이어도 소송이 배척될 수 있는지가 궁금한 분들을 위한 해설입니다.
사건은 어떻게 시작됐나
15년에 걸친 사건입니다. 사실관계부터 정리합니다.
2005년 11월. 한 부부가 인터넷 대리모 카페를 통해 여성 A씨를 만났습니다. A씨가 난자와 자궁을 제공해 아이를 출산해 주면 8,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했습니다.
2006년 9월 22일. A씨는 자신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체외 수정한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부부는 약속대로 8,000만 원을 지급하고 아이를 인도받은 뒤, 남편을 부(父)로 아내를 모(母)로 하여 친생자 출생신고를 마쳤습니다. 아이는 이들이 친부모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A씨는 아이가 100일 무렵부터 부부에게 출생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30회 이상에 걸쳐 합계 5억 원 이상을 받아냈습니다. 2010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입양의 효력을 인정하고 친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해 부부에게 건넸습니다.
2016년과 2017년. A씨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면서, 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6억 5,000만 원을 요구하는 우편물을 보내고 인터넷과 SNS에 아이의 출생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당시 11세였던 아이는 이 과정에서 대리모 출생 사실을 알게 되어 극심한 충격을 받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2019년과 2021년. A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공갈)죄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수형 중이던 2021년 1월, 또다시 이 사건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대리모 계약과 권리 포기 각서는 유효한가
대법원은 둘 다 무효로 봤습니다.
대리모 계약이란 보조생식 시술을 통해 임신·출산한 자녀를 타인에게 인도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이런 계약이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보조생식 시술을 통하여 임신·출산한 자녀를 타인에게 인도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대리모 계약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출생한 자녀를 거래의 객체화하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형성된 모자간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깨뜨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하므로, 민법 제103조에서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로서 무효이다.
그렇다면 A씨가 썼던 친권 포기 각서는 어떻게 될까요. 아이 측은 이 각서를 근거로 부제소 합의가 있었으니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제소 합의가 유효하다면 법원은 본안을 심리할 필요 없이 소를 각하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각서는 무효인 대리모 계약의 연장선에 불과하고, 친모로서의 신분상 권리를 포기하는 합의는 우리 법질서가 허용하지 않으므로 유효한 부제소 합의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률상 친모는 누구인가
계약이 무효라면 아이의 법률상 어머니는 누구일까요. 대법원의 답은 아이를 낳은 대리모입니다.
우리 민법상 모자관계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에 의해 결정됩니다. 대리모 계약이 무효라 하더라도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아이를 직접 출산한 A씨를 법률상 친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A씨가 이긴 사건처럼 보입니다. 결론은 반대였습니다.
진실한 혈연을 확인하는 소송도 거부될 수 있는가
대법원은 두 번째 쟁점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진실한 혈연관계를 법률상 신분관계로 일치시키는 것은 신분질서의 안정을 위해 법이 장려하는 정당한 행위입니다. 소송을 제기한 동기나 목적이 다소 불순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친생자관계 소송을 쉽게 물리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기에 자녀의 복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자녀의 복리는 친자관계의 성립과 유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므로, 친생자관계 존재확인의 소를 통해 진실한 신분관계를 귀속시키는 것이 오히려 자녀의 복리에 현저히 반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도 예외적으로 소권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소권남용이란 형식적으로는 소를 제기할 권리가 있더라도, 그 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법원은 소권남용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대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해쳐 소권남용이 되는지 판단하기 위한 6가지 심사 기준을 최초로 제시했습니다.
- 법률상 친자관계가 진실한 혈연관계와 달라진 경위
- 법률상 부모와 자녀가 친생자관계에 준할 정도의 정서적 유대와 실질적 생활관계를 형성·유지해온 기간과 내용
- 판결로써 친생자관계의 존재를 확정함에 따라 자녀 및 법률상 부모가 입을 고통이나 불이익
- 원고가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에 이른 경위와 동기 및 목적
-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원고가 입을 고통이나 불이익
- 원고 외에 현저하게 불이익을 받는 제3자의 존재 유무
이 기준을 이 사건에 적용해 대법원이 짚은 사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아이가 출생 직후부터 양육 부부와 공고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해 왔다는 점. 둘째, A씨가 장기간 협박으로 거액을 편취하고 출생 비밀을 폭로해 아이가 극심한 충격을 받아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출국하게 된 점. 셋째, A씨가 아이에 대한 애정이나 염려를 표현한 적이 없고 소 제기를 금전 요구의 수단으로 활용한 점.
이런 사정을 종합해 대법원은 A씨의 소가 소권남용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이 남긴 것
기존 법원은 가사 소송에서 유전적·혈연적 진실을 확인하는 소송을 웬만하면 제한하지 않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 태도를 바꿨습니다. 아무리 핏줄이 이어진 친모라 하더라도, 그 권리 행사가 자녀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고 복리를 현저히 해친다면 법이 그 소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가족법과 상속법을 다루다 보면 기계적인 법의 잣대보다 무엇이 진정으로 가족을 위하고 아이를 위하는 길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혈연이라는 자연적 사실보다,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지켜주는 정서적·사회적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리모 계약은 법적으로 유효한가요?
A. 무효입니다. 대법원은 보조생식 시술로 임신·출산한 자녀를 타인에게 인도하기로 하는 대리모 계약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자녀를 거래의 객체로 삼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보았습니다. 민법 제103조가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로서 무효입니다.
Q. 대리모가 낳은 아이의 법률상 친모는 누구인가요?
A. 아이를 출산한 대리모입니다. 우리 민법상 모자관계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에 의해 결정되므로, 대리모 계약이 무효라 하더라도 직접 출산한 사람이 법률상 친모가 됩니다.
Q. 친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친모로서의 신분상 권리를 포기하는 합의는 우리 법질서가 허용하지 않으므로 유효한 부제소 합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무효인 대리모 계약의 연장선에서 작성된 각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Q. 혈연상 친모가 맞는데도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가 거부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진실한 신분관계를 확정하는 것이 오히려 자녀의 복리에 현저히 반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도 예외적으로 소권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Q. 법원이 소권남용을 판단할 때 무엇을 보나요?
A. 대법원은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법률상 친자관계가 혈연관계와 달라진 경위, 법률상 부모와 자녀가 형성한 정서적 유대와 생활관계의 기간과 내용, 판결로 인해 자녀와 법률상 부모가 입을 고통이나 불이익, 원고가 소에 이른 경위와 동기 및 목적, 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원고가 입을 불이익, 그리고 현저하게 불이익을 받는 제3자의 존재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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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생식술로 태어난 자녀의 신분 관계는 계약서 한 장이나 각서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처럼 혈연과 양육의 현실이 어긋나는 사건에서는 법률상 지위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소송이 가능하고 어떤 소송이 배척되는지를 사실관계부터 따져야 합니다.
법무법인 여정의 김혜경 변호사는 가족법과 상속 분야에 집중해 친생자관계 확인, 친권, 상속 분쟁 사건을 다루어 왔습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카카오톡 채널로 상황을 남겨주세요. 사실관계에 맞는 절차부터 함께 정리해 드리겠습니다.